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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 관련 이야기

 

 

bt03.png 인의동에 얽힌 이야기

 

오늘날 구미시 인동에는 독특한 이름의 행정동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인의동(仁義洞)’입니다. ‘인의(仁義)’라니, 어딘가 철학적인 느낌이 들지 않나요? 사실 이 이름은 단순히 행정구역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조선시대 여헌 장현광 선조의 사상이 담긴 깊은 뜻을 품고 있습니다.

 

‘인의동(仁義洞)’은 원래 ‘인의방(仁義坊)’이었습니다.

‘인의동’의 뿌리는 조선 중기의 학자 여헌 장현광이 태어난 마을, 즉 ‘인의방’에 있습니다. 여기서 ‘방(坊)’은 ‘동네’, ‘마을’이라는 뜻입니다.

원래 이 마을의 이름은 ‘인의방’이 아니라 ‘인선방(仁善坊)’, 즉 ‘어질고 착한 마을’이었습니다. 하지만 임진왜란 이후 여헌이 이 마을 이름을 고쳐 ‘인의방(仁義坊)’, 즉 ‘어짐(仁)과 의로움(義)의 마을’로 바꾸었습니다. 왜 이름을 바꿨을까? 여헌은 단순히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바꾼 게 아닙니다. 그는 마을 이름 하나에도 철학적 원칙을 담고자 했습니다. 여헌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인(仁)’이라는 말은 이미 ‘선(善)’의 덕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굳이 ‘선’을 반복할 필요가 없다. 대신 ‘의(義)’를 더해 ‘인의’로 하면 더 균형 있는 의미가 된다.” 게다가 마을 터가 동쪽을 주로 하고 서쪽을 바라보는 위치였기 때문에, 동쪽의 ‘인(仁)’, 서쪽의 ‘의(義)’라는 사성(四性) 철학에 따라 이름을 ‘인의’로 정한 것도 있습니다. 즉, 자연 지형과 유학적 덕목을 함께 고려한 작명인 셈이죠.

 

큰 덕을 마을 이름에 쓴다고?

하지만 여헌의 작명에는 반론도 있었습니다. “‘인의(仁義)’와 같은 크고 고귀한 덕을, 고작 마을 이름으로 삼는 건 지나치지 않나?”하는 의견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여헌은 이렇게 반박합니다. “인의(仁義)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어야 할 본성이다. 그것을 마을 이름으로 삼는 것이 과한 일은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이름 붙임으로써, 마을 사람들 모두가 그 뜻을 되새기고 실천할 수 있다면 얼마나 바람직한 일이겠는가?”여헌은 마을 이름이 단지 표지판이 아닌 인간 본성의 거울이자 교육의 장이 되길 바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이 이름을 보고 뜻을 생각하여, 반드시 인(仁)에 거하고 의(義)를 따르는 풍속을 이루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러한 깊은 뜻이 담긴 ‘인의방(仁義坊)’이라는 이름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인의동(仁義洞)’이라는 행정명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구미시 인동동은 오늘날에도 ‘인의동’을 포함한 여러 행정동을 관할하고 있어, 인동과 인의는 모두 살아 있는 지명입니다. ‘인의(仁義)’는 단순한 단어가 아닙니다. 여헌은 이 두 글자에 사람다운 삶의 본질이 담겨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뜻을 자신이 태어난 마을 이름에 새김으로써, 후손들에게도 인의의 삶을 실천하라는 메시지를 남긴 것입니다.이처럼 마을 이름 하나에도 철학과 역사, 이상이 깃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땅과 마을 이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서 선조들의 지혜와 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현재 인동장씨 대종회 모임으로 인의회가 있으며, 남산파 모임으로 인선회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모두 여헌 선조의 뜻을 이어받기 위해 만든 모임입니다.